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단종 1년) 11월 10일 (음력 10월 10일)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반대파들을 숙청하여 정권을 장악한 정변이다.

2022. 8. 18. 21:10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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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자신의 단명(短命)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신의 사후,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

 

김종서 (1383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의 이조정랑 임기 1426년 4월 ~ 1433년 12월 군주 세종 이름 별명 자(字)는 국경(國卿) 호(號)는 절재(節齋) 시호(諡號)는 충익(忠翼) 별명은 백두산 대호(白頭山

ko.wikipedia.org

그중에서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으며, 조정의 신료와 왕실, 심지어 환관, 나인까지도 이들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김종서와 조정 대신 제거

수양대군은 좌의정 김종서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수하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고, 김종서는 들어가 담소를 청하나 수양대군은 핑계를 대면서 주저하였고, 미리 준비한 유인용 편지를 김종서에게 전달한다. 김종서가 편지를 달빛에 비춰 보는 순간 수양대군의 신호를 받은 종 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내리쳤고, 이어서 임운이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와 그 동료들을 철퇴로 내리치니, 계유정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듯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자,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의 처벌을 형식적으로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곧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켰다가 의금부를 통해 사약을 내렸으며, 살해된 조정 중신의 처첩, 자녀들을 노비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정난공신 1등에 자신과 정인지, 그리고 사돈지간이었던 한확 등을 임명하고, 나머지 신하들을 2등, 3등으로 책록하여 조정의 주요 관직들을 독점했다. 수양대군 자신은 영의정과 군권을 모두 장악하여 사실상 재위의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역적으로 단죄된 안평대군 등은 선원보략에서 삭제되었다가 훗날 숙종 때 복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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